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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김해인으로 휘는 한주 가락국 수로왕 위 비조로 하고 중조 휘 관의 22세손으로 증조 휘 창성조 휘 기두 고 휘 용영이고 1876년 9월 11일에 출생하셨다. 선생은 천재박식하여 한학에 치중하더니 1910년 8월 29일 국치일인 한일합방의 비보를 접하고 통탄함을 금치 못하신 선생은 구국의 길은 인재 양성에 있다 하시고 서당을 개설하여 한학을 가르치고 수백제자에게 배일사상을 고취시켜 후일 청산 독립만세운동에 많은 사람이 동참하는 계기가 되었다.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민족의 울분이 일시에 폭발하여 온 민족이 동참하였으니 민족혼이 살아 있음이요, 민족 정기가 건재하였음이라. 이로써 세계만방이 경탄지목하였고 자주독립국임을 선포한 것이다.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확산된 독립만세운동의 거사가 어찌 청산면민들의 가슴에 불붙지 않으리요! 인근 주민의 존경을 받고 선각자적 식견을 가지셨던 선생께서 독립 만세운동을 계획하시고 청산면 인정리, 신매리, 효목리 주민들을 은밀히 규합하는 한편 청산면 곡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