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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이현은 약 사백년전인 1592년(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한 바로 그 해 동복현감 황진 휘하의 아군이 당시 바야흐로 전주를 침공코자 상주 금산을 거쳐 대거남하하던 왜군을 맞아 일대격전을 벌린 곳이요 격전 끝에 역사적인 대첩을 올려 호남을 궤멸의 직전에서 구하고 후일의 조국중흥의 기틀을 마련한 곳이다. 주장의 뛰어난 전력과 용맹무쌍한 선전, 그리고 동복인 공사억, 장흥인 위대기, 전주인 황박, 남원인 소제등 장군막하 제의사들의 용전이 크게 주효하여 그와 같은 대승을 올렸던 것이다. 당시의 총지휘관은 전라도절제사 권율장군이었다. 대저 저 천하무도의 침략광 풍신수길의 명하에 수륙이십만의 왜군이 태평 속에 전쟁을 모르고 전비가 전무한 우리의 강토를 급습,부산포에 나타난 것은 이해 4월 13일, 다음 양일간에 부산동래를 연이어 함락시킨 후 북상을 계속하여 상주 충주의 방어선을 일거에 무너뜨린 저들은 5월3일에는 이미 수도에 입성하였며, 삼일전 이른 새벽에 황망히 북행길에 오른 국왕 일행을 뛰쫓아 6월15일에는 멀리 평양에까지 북상하여 의주의 피난조정을 극도의 불안 속에 몰아놓었다. 조야가 최후의 보루로 믿었던 함경도도 7월초에는 무너졌으며 이제 조정이 당장 택할 수 있는 길은 명에 원군 요청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호남충의지사의 봉기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과연 호남은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물론 주지하는 바와 같이 명도 우리의 요청을 수락 , 지원군을 파견하여 평양을 탈환하는 등 한 때 전세를 만회하나 그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호남에서는 전란의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먼저 우국충의지사들이 혹은 순수 한 독서사인의 자격으로 혹은 전직관리 또는 현직수령으로서 각지에서 분기 , 창의의 기치 아래 많은 관군 및 의병을 결집하여 왜적과의 싸움을 전개하였으며 이현에서의 승전은 바로 그 과정에서, 그리고 특히 위와 같은 위난의 상황하에서 울린 장거였던 것이다. 그것도 비록 해상에서는 그간 옥포,당포,율포에서 이순신장군의 영웅적인 승전이 계속되었으나 육전에서는 전쟁 발발 이래 근삼개월 동안을 거의 패전의 연속으로 몰리던 차에 올린 것이다. 어디 그 뿐 인가. 이곳 이현은 그 전략상의 위치로 보아 조국의 재흥은 어쩌면 거의 무망하였을 그러한 요충지였으며 그러기에 영남을 휩쓴 왜군의 일지가 처음에 웅치 공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