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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고 공주읍까지 만세시위를 감행하니 태극기는 대지를 뒤덮었고 군중의 의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 하였으며 우렁찬 함성은 산천을 진동시켰다. 때는 4월 1일 석송리 무지 개울뚝에서 선생이 주도로 800여명이 궐기하여 만세를 고창하니 그 소리 하늘에 닿고 땅에 울렸으니 어찌 장하다 아니 하리오. 다시 선생의 선도로 군중은 광정리로 노도와 같이 행진하여 일경주재소를 파괴하고 일인가옥을 소각 후 석송리로 되돌아왔을 때 일본헌병들과 만나 격투를 벌였으나 총검 앞에는 당할 수 없어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선생은 주모자로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시고 공주형무소에 수감되였다. 2년 후 출옥되였으나 옥고의 여독으로 내내 병고에 시달리리면서도 항상 자라나는 후세에 민족정신을 고취하시는 등 일생을 통하여 항일운동을 하시다. 그렇게도 갈망하시던 조국 광복도 보시지 못한 채 1945년 3월 26일 51세를 일기로 값진 공적을 남기시고 서거하시니 정부에서는 그 크신 업적을 기리어 1983년 8월 30일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선생은 실로 조국광복복의 등불이시며 또 길잡이였음으로 거룩한 공적을 기리며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이 공적비를 세워드린다. 금산군수 박종순 세움 서기 1988년 10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