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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여 쌍의 젊은이에게 행복한 삶을 인도하였으니 공의 인품이 얼마나 너그러우며 얼마나 많은 사람을 품에 안고 있었는가를 가히 알 수 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없이 봉사하면서 살았기에 많은 사람을 얻었고 (관즉득중) 금산군민의 사랑을 받았으며 1995년 7월 1일 금산군민의 열화 같은 성원을 받아 민선 초대군수로 당선되었다. 1998년 2월 1일까지 2년 7개월간 금산군정을 맡아 보면서 새벽 4시부터 밤 늦게까지 금산군 골골을 누비며 민정을 살피시고 현장을 점검하였고 많은 정책을 개발하여 군정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으며 민생을 구휼함에 있어 환,과,고,독의 사궁을 최우선으로 하였으니 성현의 덕을 본받은 애민선정이였다. 인삼산업법 개정, 인삼 종합전시관 건립, 인삼연구소설치,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휴게소 유치와 중국길림성 안도현과의 자매결연을 통한 국제시장 개척과 사회복지를 위하여 1,080명의 여성자원봉사대를 조직하여 군민복지증진에 기여한 공은 홍조 근정훈장(4418호)과 대통령 표창(1763호)과 함께 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아!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의 장난인가? 그토록 사랑하던 군민과 산적한 군정을 두고 공은 1998년 2월 1일 09시에 원효암에서 순직하였으니 운명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허망하다. 공의 부음을 전해들은 군민들은 오열하였으며 군민의 곡지통지 속에 장례는 금산군민장으로 엄숙히 거행하였다. 매섭게 추운 일요일 이른 아침에 과로에 지친 몸을 돌보지 아니하고 비가 샌다는 요사를 확인하러 갔다가 변을 당하였으니 구학에 죽는것을 서슴치 아니한 지사와 살신성인 하는 인인에 비할바이니 공의 숭고한 애민정신과 목민정신을 후세에 전하여 영세불망케 함이 도리이다. 이에 유생 이병화는 삼가 비문을 짓고 금산군기관단체장과 금산유림과 공을 기리는 현친회원이 합심하여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운다. 2003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