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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송철은 1894년 1월 23일 동학혁명군이셨던 아버지 송학운과 어머니 윤파평의 셋째 아들로 부리면 양곡리 경당마을에서 태어나 「사람은 곧 하늘이며 사람 섬기기를 하라」는 동학사상을 본받아 인생의 철학을 스스로 깨닫고 조국광복과 구국 일념으로 대한독립운동과 애국애족운동을「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 자선을 숨겨 두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90 평생을 겸손되이 살으셨으니 과연 훌륭하신 애국지사요. 우리의 스승이시다. 선생께서는 소년시절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한일합방의 원흉인 이등박문을 민족의 이름으로 저격 사살함을 보면서 독립운동을 결심하시고 사랑하는 부모와 처자를 떠나 1916년에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시여 조국광복과 자주독립 번영을 위하여 헌신 봉사 하셨다. 그후 미국에서 망국의 한을 가슴에 안고 고학을 하셨으며 1921년 대한인 동지회를 창건하여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리승만박사를 중심으로한 독립운동을 앞장서셨으며 특히 부인의 헌신적인 내조로 일심동체가 되어 조국독립운동과 사회사업을 성취하게 되셨다. 1940년까지 금산 출신 임일 김용중 향우와 함께 독립운동을 지원 하셨고 1945년 8월 15일 조국광복의 감격과 기쁨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나라 빼앗긴지 36년 만이요 독립을 위하여 망명분투하신지 31년만의 대한독립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도 미국에서 생활하시면서 6.25사변 이후 11년간 구호품 등을 수집하여 보내는데 앞장서셨으며 특히 1947년을 전후하여 송철지사는 임병직(외무부장관) 임영신(상공부장관 금산 출신)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관한 대 유엔 로비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셨다. 후손들에게는 애국심을 교육하기 위하여 로스엔젤레스에「무궁화 학원」을 설립하셨고 미국에서의 조국독립운동 및 미주 한국인 이민사의 산 증인으로서 그 크고 거룩한 업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으므로 민족의 추앙을 받음이 마땅한 일이다. 그러므로 1948년에는 리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애국장을 1970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동백장(제439호) 1994년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2000호)을 받으셨으며 오로지 나라와 겨레 사랑으로만 점철된 향년 93세로 1986년 2월 27일에 영면하셨으니 이제 선생의 고귀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고 그 업적을 자손 만대에 전하고자 여러분의 정성을 모아 「애국지사 송철 추모비」를 세운다. 1998년 3월 1일 김환식 글 애국지사송철 추모비 건립추진위원회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