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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금산 땅은 예로부터 의혈이 면면히 흘러 내를 이루고 호국의 기개가 의연한 뫼로 높이 솟은 고장이니 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에서 임란때는 칠백의사의 장렬한 죽음이 꽃으로 피어남을 볼 것이며 한일합방의 치욕을 순절로 씻은 군수 홍범식 공의 지기가 푸른 대나무로 우거져 있음을 알 것이다. 하눌며 온 강산이 일제의 어둠을 민족의 횃불로 밝히고 그 압제의 사슬을 독립만세의 함성으로 끓던 기미년 3월 1일에 어찌 그 성스러운 빛과 소리가 이 고장 금산에 이르지 않았겠는가. 우리 임승환 열사는 서울 중동학교에서 배움을 닦던 약관의 몸으로 감연히 서울의 3.1의거 시위대열의 앞장을 섰고 진고개에 이르러 왜적의 잔악한 군도를 머리에 맞고 쓰러졌으되 끝내 그 뜻을 굽히지 않았도다. 오히려 그 상처를 안고 향리로 돌아온 이후 낮에는 치료 밤에는 김용술 열사와 더불어 금산 거사 계획에 몰두하여 마침내 여러 애국청년들을 모아 긍천지서하고 의거의 날을 택하였으니 그날은 바로 기미년 3월 23일이 고장 읍내의 장날이라 김용구 열사 집에서 만든 금산 경고라 제한 격문을 이날 일찍부터 은밀히 돌리고 하오 2시에 금산읍 우시장에 모여든 사람들과 장꾼들이 삽시간에 합세하여 일을 이르키니 그 뜻은 홀연히 잠자던 겨레의 양심에 우국의 불길이 되고 닫혀졌던 입에 자유의 바람이 되어 온 금천 고을 사람들이 일어섰으니 장쾌하고 또 장쾌한 의거였도다. 임승환 열사가 낭독하는 독립선언문에 이어 김용구 열사가 선창하는 대한독립만세 소리는 백이 무리를 이루고 천이 발을 구르며 내닫는 천동의 메아리로 울리고 김용구 구호열 변희조 김종구 등 이십여 열사들이 앞장선 군민의 행렬은 성난 파도로 그 위세를 떨치니 총과 칼을 든 왜적들도 감히 어찌할 바를 몰랐도다. 이윽고 왜적의 무리들은 잔인무도하게 시위대열을 헤치기 시작했으며 끝까지 항거의 외침을 멈추지 않고 만세를 연호하는 주도자 임성환 김용술 열사 등의 손목에 쇠고랑을 채워 끌어갔으나 금산군민의 구국열정에 타는 불꽃은 꺼지지 않았도다. 그리하여 그날밤 10시경에는 김일남 열사를 비롯 삼십여명의 애국청들이 금산읍 남산밑에서 만세를 부르고 읍내로 향하니 곳곳에서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남녀의 별과 노소의 차가 없었고 독립을 외치는 함성에 밤과 나자이 따로 없었도다. 어찌 여기에서 그쳤으리오 제원면 제원리에서 박영규 열사는 3월 25일과 26일 이틀 사이에 2백여 온 마을 사람들을 모아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의 불을 밝히니 그 불은 다시 이어져 3월 28일의 금산읍 장날 파장 무렵에는 돌연 시장에서 수백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치는 시위로 번지고 그날밤 10시경에는 서일산에 봉화가 올라 금산읍은 물론 군내 곳곳에서 다시금 태극기의 물결과 독립만세의 함성이 터졌도다. 이때 김현재 한철종 김태준 정해준 열사 등 이십여명이 왜적에 붙들려 갔으며 다시 31일에는 복수면 곡남리에서 김영호 정재철 오연구 유영○ 제 열사를 중심으로 2백여명이 모여 서리발 같은 왜적의 총칼을 뚫고 또 만세를 부르니 장할진져 기미년에 그 많은 도시와 여러 고을에서 3.1의거가 일어났으되 이 땅 금산 고을처럼 열흘이나 그 만세 소리가 메아리를 이루고 그 깃발이 물결을 지은 일은 드물고 또한 드문 일이었으으니 우리의 항일독립운동사의 한 장에 길이 빛나게 되었음이라. 슬프다. 이 의거로 하여 하공학 열사는 왜적의 손으로 죽음을 당했으며 한철종 김두재 열사는 전주감옥에서 모진 옥고 끝에 순국하였으니 왜적의 매질과 고문으로 참혹한 고초에 시달렸던 이름없는 열사들은 또 몇이였던가. 어찌 이루다 헤아릴 수 있으리오. 또한 수많은 의거주동자들은 끊임없는 핍박을 받았으며 김용구 임승환 구호열 변희조 박영규 김일남 등 여러 열사들은 전주감옥에서 처절한 옥고를 치렀으니 어둠의 벽속에서 봄소식을 듣고 찬마루에서 겨울을 보낸 것이 그 몇 해였던가. 이 금산 땅에서 자라난 한 포기의 풀과 한 그루의 나무 그리고 무심한 냇가의 돌맹이까지도 부디 이 일을 잊지 말거라 3.1의거 60돌을 맞아 가신 님들이 외치신 만세 소리와 흘리신 그 의혈을 여기 한 조각 돌 위에 새기나니 감히 그 불망의 뜻을 저 비와 바람도 지울 수 없을 것이니라. 서기 1979년 단기 4312년 기미 12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