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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빈은 충남 논산(論山) 사람이다. 그는 영가무용단(詠歌舞踊團)을 설립하여 활동하던 중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자 영가무용단(詠歌舞踊團)을 재정비하고 단원 이내수(李來修)·윤상욱(尹相旭)·김한복(金漢復) 및 임종만(林鍾萬) 등과 함께 전북 및 충남 일대에서 해외 독립운동 단체를 지원하기위한 군자금 모금활동을 폈다. 1921년 11월 25일에는 동지 선영기(宣永基)와 함께 전북 익산군(益山郡) 망성면(望城面) 어량리(漁量里)에 거주하는 김용보(金溶普)로부터 군자금 108원을 모금한 것을 비롯하여 각처에서 모금활동을 전개하다가 1921년 12월 30일 일경에 피체되었다. 1922년 3월 27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 강도협박 및 장물수수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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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적비는 은진송씨 동춘당 문정공 휘 준길 선생의 9대손인 종빈 의사의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뜻을 선양하기 위한 현충시설로 현씨 독지가 박승찬이 건립부지를 기증하여 종중에서 서기 1980년 9월에 건립하였다. 그후 시설이 노후되어 국가 보조금과 종중 및 후손이 비용 일부를 부담하여 서기 2002년 11월에 보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