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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선 선생 생가지(宋秉璿 先生 生家址) 조선말의 문신(文臣)이자 우국지사(憂國支士)였던 송병선(宋秉璿)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처음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몸채를 비롯한 사랑채 등 여러 건물들이 1.400여 평의 대지 위에 서 있었으나 그 후 많이 변모하여 한때는 성남장(城南莊)이라는 음식점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장대석(長台石) 기단(基壇) 위에 정면 4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의 기와집 1채만 남아있다. 선생(1836~1905)은 우암(尤庵)의 9대손으로 향리(鄉里)에서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제자 양성에 힘썼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고종(高宗)에게 상소(上疏)하여 시정개혁을 주장하고 일본을 경계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일본헌병대에 의해 고향으로 강제 이송당하였다. 이에 망국(亡國)의 울분을 참지 못한 선생은 음독자살 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建國功勞勳章)이 추서(追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