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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녕 장군은, 충남 천안(天安) 사람이다. 대한제국의 육군 부위(副尉)로 복무하던 중 군대가 해산되자 일가족을 거느리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는 이세영(李世永)·양성환(梁聖煥) 등과 함께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으로서 경학사(耕學社)의 정신을 준수하여 낮에는 개간과 농업에 종사하는 한편 군사훈련을 실시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1919년에는 서 일(徐一)·현천묵(玄天默)·김좌진(金佐鎭)·계 화(桂和)·조성환(曺成煥)·박성태(朴性泰) 등과 함께 북로군정서를 조직하고 참모장 및 참모관으로 활약하였다. 한편 북로군정서에서 세운 단기속성 사관학교의 교관으로서 이범석(李範奭)·김홍국(金洪國)·최상운(崔尙雲) 등과 함께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0년 말에는 청산리독립전쟁 이후 밀산(密山)에서 3,500여명의 대병력을 거느린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이 조직되자 참모장으로서 총재 서 일, 부총재 홍범도(洪範圖), 조성환 등과 함께 대일 무력항쟁을 계속하였다. 1922년 6월에 재만군사기관이 통합하여 대한통의부가 조직되자, 참모로서 윤세용(尹世茸)·손병헌(孫炳憲)·오석영(吳錫永)·독고 욱(獨孤旭) 등과 함께 참모부장인 이천민(李天民)을 보필하였다. 그리고 1924년 3월에는 현천묵(玄天默)·나중소(羅仲昭)·김 혁(金赫) 등이 대한독립군정서를 조직하자 조성환·김규식(金奎植)·김 필(金弼) 등과 함께 참모로서 활약하였다. 1924년 7월 10일 길림(吉林)에서 전만통일의회주비회가 개최되었을 때에는 윤 각(尹覺)과 함께 대한독립단 대표로 참가하여 신민부(新民府)의 발족에 기여하였다. 이에 따라 1925년 북만 영안현(寧安縣)에서 과거 북로군정서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신민부가 조직되자 이범윤(李範允)등과 함께 참의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30년 7월에는 홍 진(洪震)·이청천(李靑天)·민 무(閔武)·황학수(黃學秀)·신 숙(申肅) 등과 함께 한족자치연합회(韓族自治聯合會)를 모체로 한 한국독립당을 조직하고 감찰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한·중 연합군(韓中聯合軍)을 조직하여 무장항일 활동을 계속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