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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에 참가하셨다가 동년 4월 족제 태원 로원 등과 함께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김구 선생 휘하에서 경무국원으로 활약하고 동년 9월에는 운남군관학교에 입교 군사학을 전수하였다. 1920년 7월에는 임시정부 명령으로 입국하여 김가진 전협이 주도하는 대동단에 가입 의친왕을 상해로 망명시킬 계획을 추진하였고 그후 이면호 김규식과 더불어 한성사령부를 설치 무장 봉기를 계획하였으나 비밀이 탄로되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이듬해 상해로 다시 탈출 임시정부에 종사하며 태평양회의 외교후원회 조직에 가담 1923년 동 후원회의 밀사로 국내에 잠입하여 자금을 조달하다가 체포되어 2년 징역형을 받고 복역 8개월만인 1925년 신병으로 출옥되여 영주 부석사를 거점으로 영 호남 일대에서 재차 활동 중 1926년 왜왕 소화의 즉위를 앞둔 검속으로 연행되다. 부여에서 왜인 형사를 퇴치하고 논산 양촌면 임화리 양지학집에 피신 국외 탈출을 도모하였으나 왜경에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9년간 복역 중 고문 여독으로 위중하자 1934년 2월 일시 병보석되었으나 끝내 쾌차치 못하고 동년 음 6월 13일 목메에도 그리던 조국광복의 한을 품으신 채 파란만장의 생애를 맞치고 영민하시였다. 선생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