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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 이수욱 지사는 이 고향 출신으로 의협심이 강하고 애국정신이 투철하여 일제 침략하에 신음하는 우리 국가 민족의 비참한 현실을 통탄하고 약관의 젊은 나이로 웅지를 품고 상경하였다. 당시 국내정세는 주권을 왜적에게 약탈당한 지 10년 적의 철쇄에 억매였든 우리 애국지사들은 일편단심 국권을 회복코저 해외에서는 독립투사들이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고 국내에서는 독립선언문을 작성하여 세계만방에 선포하며 3.1운동을 활발히 전개할 때 그는 시각을 지체 않고 고향인 신정리로 돌아와 의연히 독립정신을 발휘하여 애국심에 불타는 동지들을 규합하니 이에 호응한 동리거주하는 추경춘 윤상원 추득천 윤상돈 정원필 윤자훈 이추양 윤자벽 윤자명 이규영 이상건 윤상은 이장희 정상복 이광희 등 15인은 그의 주동하에 비장한 각오로 결사대를 조직하여 선두에 나서 야음을 타고 은밀히 각리를 순방하며 이에 참여하기를 역설함과 동시에 비밀리에 제작한 국기를 배부하고 독립선언문을 살포하며 기미년 3월 13일 음 2월 12일 전의장날을 기하여 이 운동을 거사키로 하였다. 드디어 이 날이 닥쳐오자 수천 군중이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시장에 운집하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천지가 진동하게 부를 때 왜구들이 몰려오매 이를 제지하려고 감투하였으나 잔학무도한 왜병들이 총검을 휘두르며 위협 발포하니 일시에 수라장으로 변하는 유혈참극이 버러졌고 왜구에게 체포된 자 수십인이러니 이 운동에 앞장섯든 결사대원 16인만 공주 검사국에 송치되고 여타는 석방되었다. 검사국에 구치된 이들은 혹독한 고문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왜적의 침략행위를 힐책하며 끝내 항일하니 천인공로할 만행적인 혹형에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르러짐은 물론 주도자인 이수욱은 우심한 조형까지 당하여 손톱 발톱이 다 으스러져 상실되었다. 이들은 6개월동안 미결수로 감옥에서 무수한 고초를 격다가 재판에 회부되어 억울하게 중형 언도를 받고 옥고를 치루니 모두가 분통함을 금치 못하였다. 이와같이 천추에 빛나는 충절을 남겼으니 민족의 귀감이라 오등은 지사들의 유방을 추모하고 위훈을 후세에 전하며 민족정신과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이에 추모비를 건립하노라. 단기 4318년 을축 11월 일 우제 윤재국 찬, 여산 송해석 서 추모비건립추진위원회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