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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훈은 충남 연기군(燕岐郡) 전의면(全義面) 읍내리 전의시장에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운동을 펼쳤다. 전의면 신정리(新井里)에 거주하는 이수욱(李秀郁)은 서울에서 고종(高宗)의 인산(因山)에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귀향하여 윤자훈을 비롯한 마을 인사들과 1919년 3월 13일 장날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태극기를 미리 제작하여 거사 당일 시장 통로인 갈정동(葛井洞) 고개에서 장에 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시장에 이르러 이수욱이 연설을 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군중들은 태극기를 꺼내어 휘두르며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장 각지를 행진하였다. 헌병분견소의 헌병과 조치원에서 급거 출동한 철도원호대원(鐵道援護隊員) 20여 명이 합세하여 윤자훈을 비롯한 주동 인물을 체포하였다. 윤자훈은 1919년 4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윤자명은 충남 연기군(燕岐郡) 전의면(全義面) 읍내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고종의 인산을 지켜보기 위해 상경하였던 이수욱(李秀郁)은 귀향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전의면으로 돌아온 그는 마을을 돌며 추경춘(秋敬春),윤자벽(尹慈壁)을 비롯한 주민들과 거사준비를 협의한 끝에 3월 13일 전의면 읍내 시장 장날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이들의 계획은 태극기를 몰래 가지고 가 시장에서 연설할 때, 일제히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부르며 읍내를 행진하자는 것이었다. 거사 당일, 이수욱 일행은 갈정리(葛井里) 언덕에서 역할 분담을 한 후, 장터로 향하였다. 시장에 도착한 일행은 계획대로 연설후 태극기를 나눠주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이때 윤자명도 윤자벽으로부터 받은 태극기를 흔들며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읍내로 시위행진하였다. 이 일로 붙잡힌 윤자명은 1919년 4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