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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919년 기미년 3월 1일은 우리의 선열들이 일제식민통치에 맨주먹으로 항거하며 민족자결과 민족독립의 숭고한 정신을 세계만방에 선포했던 날이다. 남녀노소 신분과 계층 지역과 종파를 초월한 우리 2천만 동포의 하나가 된 독립만세의 함성은 3천리 금수강산을 뒤흔들었다. 우리고장 공주에서도 이에 응하여 곳곳에서 대한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같은해 4월 1일 공주 장날을 택하여 이곳 만세뚝에서 시초로 일제히 일어나 광정에 도달하니 그 수 800여명이 되었다. 장날 군중들은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니 그 만세소리는 하늘에 닿고 땅을 울렸다. 그러나 어찌하랴. 공주에서 긴급출동한 헌병대의 총칼 앞에 이동림 의사는 흉탄에 쓰러지고 이기한 이동엽 전정길 정재철 문백룡 장기현 정화순 노규현 김정쇠 지기찬 최범성 김오룡 윤원식 이돈석 이월용 강억쇠 이명보 김삼룡 이선봉 황타관 홍점산 유길도 최태식 이완용 원강희 등 25 의사가 일경에 체포되어 3년에서 6월의 옥고를 치루고 이병덕 의사는 일경의 총검을 피해 원산 회령 등지도 26년간이나 피신 생활을 하였다. 3.1운동으로 모아진 민족의 광복의지는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그날까지 줄기차게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선열들의 나라사랑 높은 뜻을 기리고자 석송국민학교 학구단위 노인회가 주관이 되어 기념비를 세우고 매년 기념식을 올려왔으나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선열들의 거룩한 뜻을 되새기며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공주시민의 뜻을 모아 사적을 정비하고 이 비를 세워 기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