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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표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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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槪公의 천성이 충후하고 강견하시며 활담하시어 비록 곤궁할지라도 불의의 귀환 이를 천시하고 비록 한빈하여도 불인의 부한 이를 부러워하지 아니하며 매사에 疏漏(소누)함이 없이하시니 사람마다 장자의 風度(풍도)가 있다하며 칭송하였다 경술국치를 당하여서는 두문불출하고 오직 국권회복의 기회만을 탐구하시던 중에 기미 3.1독립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봉기되자 불원가사하시고 동분서주로 경향각지를 답보순방하며 의거의 동지를 규합중이러니 天道多舛(천도다천)하여 臨事之前(임사지전)에 발로로 외헌에 피처되어 공주감옥에서 옥고육개월여에 출감하셨으나 위귀의 감시가 극심한 중에 형극으로 별세하시니 忌九月二十七日이요 묘는 공주시 유구읍 만천리 소곡동 후록축좌원하였다. 아- 애달프도다. 공은 천부의 순수한 지절과 견확하고 불의불용하는 仁義之士(인의지사)로 전세의 가훈을 이어받아 與倫尙禮(여륜상례)하고 부귀와 세리를 草芥(초개)와 같이 輕(경)히 하시며 無我而成仁就義(무아이성인취의)하시어 扶倫化俗(부윤화속)으로 세인의 軌範(궤범)이 되셨다. 그러나 만위의 탄압정책으로 그 고상한 포부를 펴지 못하시고 옥고의 여독으로 타계하셨으니 이 어찌 천인공분의 여한이 아니오만은 천도와 인사의 회상으로 드디어 단기4228년 을해광복일에 공이 생전에 이룩하신 혁혁한 의적만을 인정받아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유공포장을 추서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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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경향의 유지인사첨위께서 공의 거룩한 위적을 추모하고 세월이 경과할수록 그 懿蹟(의적)이 湮滅(인멸)될 것을 愚懼(우구)하고 合謀鳩財(합모구재)하여 기적비를 세울새 공의 嗣孫圭元甫(사손 규원보)로 하여금 그 종제인 圭福(규복)과 圭台(규태)와 圭珍(규진)을 동반하고 來請銘文(래청명문)이어늘 余文拙不敢當責(여문졸불감당책)으로 固辭請益懇(고사청익간)으로 終不負其誠(종불부기성)하여 按其家狀(안기가상)하고 略敍次顚未如右(약서차전미여우)하여 以爲來後之信憑之資焉(이위래후지신빙지자언)하니 觀感而不與起(관감이불여기)하여 模楷以有稗乎扶植興仁崇義之萬一耶哉云爾(모해이유패호부식흥인숭의지만일야재이)하노라 단기 4328년 을해윤팔월 上浣月城戶人 崔秉武 謹撰竝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