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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立志士惠民院主事昌寧曺公紀積碑文(독립지사혜민원주사창녕조공기적비문) 大抵(대저) 우리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마땅히 事親(사친)에는 謁力至孝(알력지효)하고 報國(보국)에는 沒身盡忠(몰신진충)이라야 以至於人事矣(이지어인사의)로되 人人所難行故至以通古今(인인소난행고지이통고금)히 盡忠孝者-稀貴(진충효자-희귀)어늘 忠孝俱全(충효구전)하여 叔世之人(숙세지인)으로 하여금 본보기가 되게하여 扶網正俗(부망정속)에 이바지하신 분이 계시닌 곧 혜민원주사창녕조공이시다 按公(안공)의 휘 秉玉이요 字 潤善(윤선)이시다 시조의 휘는 繼龍(계룡)이시니 신라진평왕의 부마도위태사공이시며 그후로 頌德章甫(송덕장보)와 문무과환과 柱國勳臣(주국훈신)이 連世不絶(연세불절)하여 名閥(명벌)이 되었으나 省絶(성절)한다 傳至十八代派祖(전지십팔대파조)의 휘는 益淸(익청)이니 諡襄平公(시양평공)이요 고조의 휘 允慶(윤경)이요 증조의 휘 國振(국진)이요 조의 휘 錫雲(석운)이요 고의 휘 繼承(계승)이니 俱有文行(구유문행)하셨다. 公은 단기 四二一五년 高廟(고묘)壬千八月十日生이시며 資稟(자품)이 秀朗(수낭)하고 장중하시며 지조가 堅確(견확)하고 기예가 출범하신 중에 自幼(자유)로 근면귀학하여 사우의 推重之士가 되셨으나 혜민원주사로 외세의 跋호(발호)로 인하여 세태가 갈수록 탁란하여져 宗社難支(종사난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개탄하시고 영욕을 버리시고 鄕第(향제) 돌아와 칩거하시며 국세의 추이를 관망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