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page


172page

포의로 국보난간(國步艱難)때를 만나 국망의 치욕도 광복의 감격도 분단의 고통도 모두 자유와 독립으로 정신하시다 끝내 동족상잔의 피화로 타계하신 의연한 민족정기가 여기에 고고하니 바로 애국지사 남강 윤용주선생이시다. 선생의 성은 파평윤씨요 호는 남강이니 우리 고장 금남 문암동에서 고종 21년 갑신에 군부참위 휘 제보공의 장남으로 태어나시다. 생래로 강직하신 선생은 6세에 서울에서 한학을 전수하시다가 20세에 다시 유구면 문금리로 이전하시다. 단기 4238년 을사늑약 이후 국운은 기울어 2년뒤 정미칠조약에 의해 군대마저 해산당하고 4243년에는 치욕적인 합방으로 아 조선왕조 600년은 종말을 고하니 이에 분개한 의혈청년 선생은 4246년 정한일 이성렬 사제 익주등 제공과 함께 순종황제의 밀지를 받고 독립의군부를 조직하고 그 군사장이 되시었다. 연이 나이와 같은 운동은 바로 누설되어 동지897명과 함께 왜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루시었다. 그후 4248년 선생은 의병대장 이강덕과 사제 익주와 함께 항일을 위한 금강군을 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