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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순공은 태조 고황제의 3남 익안대군 방의의 17대손으로 자는 경실이요 호는 회천이다. 1843년 7월 7일 완산에서 출생하시고 공주 대장리(현 하대리)에 기거하시다. 연산의 대명산 아래 한양촌에 정착하셨다. 청렴강직한 선비로서 유림내 명망이 높았던 선생은 을사보호조약 체결 소식에 고종황제께 상소를 올려 일제의 야욕을 밝히고 불가함을 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세상에 할 일이 없다 하시고 후학 양성에 전념하여 제자들에게 의를 밝혀 충과 역에 대해 엄정하고 분명하게 가르치셨다. 경술국치를 당함에「신민의 역을 다하지 못한 불충에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하시고 칩거하셨으나 일제는 유림에 대한 선생의 영향력을 두려워하여 일 명치왕의 양노은사금을 주겠다 여러 차례 초청하고 찾아와 회유와 협박을 하였다. 이에「나는 대한제국의 신민으로 나라를 망하고 황제가 치욕을 당하였건만 일사보국의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하였으니 죄가 만 번 죽어 마땅하거늘 원수가 무의로 주는 금전을 받을 수 없다」하시니 일제는 굴복시키고자 옥에 가두고 온갖 협박을 다하였다. 선생을 끝내 굴복시키지 못하자 선생의 두 아들과 손자 욱을 불러 대신 받을 것을 강요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였다. 특히 차남 래준이「내 머리와 네 임금의 머리를 바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