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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투사 비아 조선생 중구 충훈비 우리 배달민족 오천년사에서 가장 큰 치욕은 실로 경술국치라 할 것이다. 이때를 당하여 국내외에서 거족적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항일투쟁이 봉기되니 독립투쟁에 대한 왜적의 강압이 날로 尤甚(우심)하여 짐은 필연적 추세이라. 수많은 애국지사들은 국내에서는 투옥 학살되고 또는 해외로 망명의 길을 떠났으니 이즈음 백제 고도 부여군 세도에서도 조국의 광복을 쟁취하고자 일생을 홍모와 같이 버리신 분이 계시니 이는 곧 비아 조선생 중구이시다. 선생은 서기 1880년 정월 14일 충남 부여군 세도면 자산리 장현에서 출생하시니 자는 雲雷(운뢰)요 非我(비아)는 자호이시며 관적은 풍양이시다. 유시로부터 기품이 준엄하고 기개는 회천동지하시었으니 쇠잔하여가는 국운을 어찌 좌시할 수있으리요. 바로 경술국치 1년 전인 서기 1909년 선생의 나이 30세 되시던 해 결연히 궐기하여 국운의 광복은 대중계몽을 하여 인재양성이 첩경이라 확신하고 장현에 천흥학교를 창립하고 스스로 학감이 되어 수년간 교육사업에 晝宵(주소) 심혈을 경주하는 한편 국내 동지를 규합하고 일방으로는 해외 망명 지사들과 접선하여 독립자금을 조달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하시니 왜적의 탄압은 불가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