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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에서 태어나셨다. 이려서부터 총명이 남다르고 매사에 정열을 다바치어 근면하교 성실하게 살아왔으며 가난한 농가에서 주경야독하여 행동거지를 옛 성현의 가르침대로 하셨으며 원래 성품이 소박하고 외유내강하여 의지가 강했고 특히 어버이에게 효성을 지극히 다하여 뭇 사람들의 흠모와 존경을 받으셨다. 투사의 나이 27세때 한일합방이란 망국의 소식을 듣고 온종일 식음을 전폐하고 땅을 치고 통곡하셨고 비단옷을 입지않고 웃음을 잃으셨다. 투사는 그 울분을 참지 못하고 향리에서 동지들을 규합하여 구국운동을 도모하시던중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의 만세소리가 하늘을 메아리치니 바로 올떄가 왔다 하시고 3월 11일 한산시장날을 기하여 담배히 의거할것을 결심하시고, 서천군 일대와 부여군 일대의 유지들을 찾아 다니며 설득하고 태극기 3백여개를 손수 제작하시어 당일 은밀히 나누어 주며 시간을 약속했다. 그날 오전 10시 정각 보인은 단상에 올라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니 시장은 온통 만세의 함성으로 지축이 흔들렸다. 깜짝놀란 왜경들은 무력으로 진압에 나셧으나 나라를 잃은 겨레의 울분은 한없이 충천하였고 투사는 죽음을 각오한채 단상을 고수했다. 잔인무도한 왜경들은 더욱 소리높여 외치는 구국투사에게 무차별 발포하여 피투성이가 된채 쓰러졌다. 그후 공주, 서대문형무소 등지에서 3년여 옥살이와 온갖 고초를 다 겪으시다가 투사의 나이 62세때 조국의 광복을 맞으셨다. 국가에서는 평생을 조국 광복에 몸바치신 본인에게 그 정로를 치하하려하니 "나는 내족구을 위해 할일을 했을뿐"이라하시며 포상을 극구 사양하고 농사에만 전념하시다가 1959년 2월 5일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나시니 또 하나의 큰별이 이땅에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