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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철 선생은, 충남 부여(扶餘) 사람이다. 1931년 봄 이호철(李戶喆)·노명우(盧命愚)·유기섭(柳基燮)·장창선(張昌善)·오기영(吳麒泳) 등과 함께 고향인 부여군 홍산면(鴻山面)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보급하고 항일독립운동을 펼 것을 목적으로 농민조합의 조직에 착수하였으나 일경의 취체가 심하여 중단하였다. 이들은 이후 전영철(田泳哲)·강도형(姜道馨) 등의 동지를 규합하여 마정리(馬井里)·금송리(今松里)·조현리(鳥峴里)·장하리(長蝦里)·중정리(中井里) 등의 각 부락에 야학을 개설하고 농민의 자제들에게 한글·산술 등의 초등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토론회를 개최하여 사회주의 사상과 항일독립의식을 고취하는데 힘을 쏟았다. 1933년 4월 기존의 홍산노동조합(鴻山勞動組合)을 적색노조로 개편함과 동시에 여러 차례에 걸쳐 비밀모임을 갖고 1933년 5월 비밀결사 부여농민구락부연합회(扶餘農民俱樂部聯合會)를 조직하여 이호철·전영철·오기영·유병철(柳秉哲)·유인철(柳寅喆)·최재봉(崔在鳳) 등을 각기 그 거주지역의 지부조직 책임자로 삼고 조직확대에 힘썼다. 이들은 또한 동년 7월 부락청년들을 규합하여 부여농민조합연합회(扶餘農民組合聯合會)의 지부로서 대야구락부(大也俱樂部)를 위장조직하고 항일농민운동에 힘쓰던 중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는 피체된 지 3년만인 1936년 6월 예심에 회부되어 집행유예 5년형을 언도받고 공주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