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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일생을 숭고하게 바친 원인 이호철선생의 애국총의는 길이 천추에 빛나 후손의 귀감이 되리라. 선생의 관은 서천이시니 동백 이병승선생의 삼남으로 서기 1901년 10월 29일에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토정리에서 출생하였다. 지혜총명이 과인하고 천성이 외유내강하여 유시로부터 학업에 정려한 발군의 수재로서 휘문고등보통학교와 일본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일찌기 고등보통학교시부터 국치와 민욕의 원한이 가슴에 사무쳐 기미3.1운동 분연히 민족의 선두에서 독립을 절규저항하다가 피체되어 인욕을 당하였으며 서기 1923년에는 대학생의 신분으로 재일동포들을 규합하여 한인협화회를 조직 맹활약을 하였고 일본대학생들에게까지 대한독립의 정당성을 주장 설득하여 감복케하였다. 동년 9월 일본 관동지진시에는 천인공노할 한국인 무차별 대학살사건으로부터 구사일생으로 생환 천신만고끝에 북간도로 향하여 만주 성동중학교에서 일시교편을 잡으면서 재만 동포들에게 항일독립사상을 열렬히 호소, 고취하였다. 서기 1930년 일제항거에 일사를 각오하고 다시 귀향하여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