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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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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메 김영기선생은 가셨읍니다. 선생을 다시는 뵈올수 없으니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그 높으신 뜻을 추모하고자 합니다. 일찌기 일제가 이땅을 강점하고 우리의 말과 글 마저 쓰지못하게 하던 그 암흑시기에 선생께서는 우리 애국시조 백수를 남몰래 송선하여 대주사범학교 학생들에게 외우게하고 수업시간엔 창문을 닫고 눈물을 를리면서 조선역사를 강의하고 우리 글을 가르쳐 민족의 독립정신을 불러 일으키셨읍니다. 마침내 선생께서는 수십명의 제자들과 함께 대전형무소에서 영어의 고초를 겪으셨으니 선생이야말로 교육을 통한 민족운동의 선구자였읍니다. 이제가 물러간후에 선생은 겨레의 스승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셨고 4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3.15마산의거에 앞서 경북고등학교학생이 중심이 되어 2.28항거의 햇불을 치켜들었을때 선생께서는 미쳐 날뛰는 독재 하수인들의 강압속에서도 교장직을 걸고 제자들의 처벌을 끝끝내 반대하여 불의에 항거하는 학생들을 옹호하셨습니다. 이승만정권이 봉괴한 그 이듬해 민주항쟁 일주년 기념식전이 학생 주도로 대구종합운동장에서 거행되었을때 학생들은 각계 기성인사들의 참석을 일제사절하고 오잭 선생 한분만을 단상에 모시고 훈설을 들었으니 선생께서는 이 땅에 교육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심는 스승으로 숭앙을 받는 영광을 누리셨읍니다. 만년에 선생께서는 명지대학교의 육성을 돕는 한편 고 외솔 최현배선생과 함께 세종대왕 기념사업회를 일으켜 우리문화유산의 선양과 주체적 민족교육의 창달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기울이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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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제자이던 박정희집권시에도 선생께서는 정치에 관여한 바 없으나 그 정권연장을 위한 3선개헌안이 나왔을때는 그것이 정도에 어긋남을 밝혀 스승으로서 솔직하게 충고하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선생은 언제나 진솔 겸허하여 매사에 숨김이 없고 사심이 없었으며 사람을 무조건 믿고 사랑하셨읍니다. 선생의 어진 품성과 제자를 아끼 정과 청렴한 생활자세는 진정 우리 사도에 영원한 귀감이 될것입니다. 이 땅은 아직 일본제국주의 잔재의 연장선상에서 민족분단의 아품을 안고 몸부림치고 있으나 선생의 80생애를 일관한 고결한 지조와 투철한 애족정신은 사람들의 가슴속 깊이 새겨져 그 유방이 백세에 전승딜것입니다. 선생의 유덕을 숭앙하는 제자들이 뜻을 모아 추모비를 세운다니 나는 반가운 마을으로 지난나의 우의를 되새기면서 먼저 가신 한메선생께서 삼가 이 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