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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되던 1915년 그는 월남 선생의 권유로 중국 상해로 건너가 난양(南陽)대학에서 여운형, 서병호 등과 함께 수학하였다. 이 때부터 김갑수 선생은 조선인 유학생회를 이끌며 항일 운동에 뛰어들었으며 3.1운동이 일어난 후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는 의정원 충청도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무렵 김갑수는 김인전 선생의 여동생 김정신과 결혼하였다. 1921년 27세 때 선생은 상해임시정부에서 파송하는 유학생 16명을 인솔하여 독일 유학길에 올라 베를린의 뷔이그즈대학에서 4년간 수학하며 물리학을 전공하였다. 귀국 후에는 북간도 용정으로 건너가 동흥중학교에서 교사로서 민족 교육에 힘쓰기도 하였으며 전북 완주에서 설립된 산업조합의 이사로서 민족자본의 육성과 임시정부 자금 마련에 진력하다 1938년 45세의 아까운 나이에 타계하였다. 출처 : 뉴스서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