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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가 없으니, 이상재선생 생가에 가서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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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金甲洙)는 충남 서천(舒川) 사람이다. 1915년 월남 이상재(李商在)와 함께 중국 상해(上海)로 건너가 남양(南陽)대학에 다니면서 여운형(呂運亨)·서병호(徐炳浩)·조동호(趙東祜) 등과 교유하였다. 그는 여운형이 이끄는 전 중국대학 축구 대표선수로 선발되어 필리핀에 원정을 가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세계에 호소하고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주장하였다. 또한 상해의 재해외(在海外) 조선인유학생회를 주도하였다. 1918년 애국동지들을 규합하고자 국내에 진입하였으나 군산에서 일경에게 붙잡혀 고문을 받다가 한국인 간수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상해로 갔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의정원 의원으로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이 당시 그는 임시정부 발행채권을 가지고 국내에 들어와 전북 임피(任陂) 등지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노력하였다. 그 후 1921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선으로 독일 베를린에 유학 중 베를린 고려학우회(高麗學友會)를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6년 귀국하여 이상재의 권유로 배재학교 교감으로 7개월간 근무하였으나, 일경의 탄압으로 북간도 용정(龍井)으로 건너가 동흥(東興)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1927년 다시 귀국한 그는 민족자본의 육성을 위해 전북 완주 봉동에서 윤건중(尹建重)이 설립한 봉우산업조합에 참여하여 이사로 활동하다가 1938년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