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page


106page

월남 이상재(1850.10.26 ~ 1927.3.29) 월남 이상재선생은 1850년 10월 26일(음력) 현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에서 고려말 충신이며 대학자인 목은 이색 선생의 16대손으로 태어나셨다. 1896년 독립신문 창간과 독렵협회의 창립을 주도하셨고 1906년 헤이그 밀사사건을 도우셨으며 1913년 황성기독교청년회(서울YMCA) 총무로 YMCA운동에 전념하면서 1919년 3.1독립만세운동과 1920년대 일제의 경제적 착취에 맞선 물산장려운동을 전개하였을뿐만아니라 1924년 보이스카웃연맹의 전신인 소년척후단 초대 총재와 조선일보 사장으로 인재양성은 물론 민족언론 문화창달에 힘쓰셨다. 1927년 신간회 초대회장으로 민족을 하나로 아우르고자 했던 선생은 같은해 3월 29일 78세의 나이로 소천하셨으며 민족역사상 초유의 사회장으로 치러진 장례에 당시 서울 인구가 35만명 이었는데 20만이 넘는 인파가 물려 선생의 가심에 애통해 했다. 이에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월남 이상재 좌상은 서울YMCA 창립83주년(1986.10.28)을 기념으로 건축한 강남회관의 준공식과 함께 회관 앞에 제막되었던 것을 2018년 1월 30일 이 곳 기념관으로 옮겨 온 것이며 한복두루마기 차림의 형상을 조각가 김경승씨가 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