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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을 회복하기 위해 전념하고 외침을 물리치는 길은 민족의 단결에 있음을 통감하여 대한독립결사단을 조직하고 안면읍에 3.1만세를 주도했으며 또 서산지단을 결성하여 그 단장으로서 단원모집과 군자금 확보에 진력했다. 지사는 그 중에도 교육 제1주의로 왜침의 악독과 망국의 억울함에 혈분하여 민족혼이 살아있으면 나라가 다시 산다는 겄을 작문을 통해 학생들에게 가르킨 겄이 일경에 알려져 체포되고 그 후 서산 독립단연락원이 양대리에서 일경에게 체포되어 대한독립단사건이 이러났다. 지사는 일경의 모진 고문에도 불굴했으며 복심법원 공판에 검사의 원심 승복 권유에 쇠고량찬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검사는 왜 피고의 항소권을 막는가 대한독립을 위해 바칠 내 생명이 하나밖에 없는겄을 나는 그대의 인권침해가 심히 불쾌하다고 말해 정내를 숙연케 했다. 검사는 피고의 법정을 모독하는 언행으로 보아 능히 협박 후갈은 물론 독립운동을 했음이 분명하다고 징역 9년을 구형했다. 지사는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4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나왔으나 조국광복의 초지는 더욱 가열되었으며 그 결정으로 8.15의 광복을 보게 되었다. 지사는 그 후에도 교육진흥에 진력하다가 1957년 6월 18일 67세로 서거하시니 장우 누동리 갑좌원하고 배는 경주김씨이니 생이요 선공 41년 무오에 졸하야 묘재 공묘우하고 유 1남1녀하니 남은 호우요 여적 여양 진승균하고 후배는 밀양박씨니 신축생이요 유 1남2녀하니 남은 원우요 여적 밀양 박성복 평강 채창석하고 손 유6하니 상열 해양상재호림은 홍우생이요 시민성민은 원우생이다. 내외 손증을 부진기라. 자고이래로 충국애족의 그 위대한 혼은 영원불멸의 천정이 있다. 그러므로 1977년 12월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