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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日帝)의 악독한 침략(侵略)으로 국권(國權)을 빼앗긴 1910년(一千九百十年) 즉(即) 경술년(庚戌年)을 전후(前後)한는 국(國)의 역사(歷史)는 우리 민족(民族)이 영원(永遠)히 씻을래야 씻을 수 없는 아픔의 역사(歷史)였고 합방(合邦)이란 이름 아래 국권(國權)을 강탈당(强奪當)한 뒤 광복(光復)을 맞기까지의 근(近) 40년(四十年)에 가까운 역사(歷史)는 우리 겨레의 고통(苦痛)과 수난(受難)이 반복되는 죽음의 역사(歷史)요 피와 눈물과 한숨에 얼룩진 역사(歷史)였다. 이런 험난(險難)한 역사(歷史) 속에서도 우리는 세상(世上)을 깜짝 놀라게 하고 일제(日帝)의 간담(肝膽)을 서늘케한저 유명(有名)하신 의사(義士) 안중근 선생(安重根 先生)을 비롯한 많은 애국열사(愛國烈士)들이 세계(世界) 어느 민족(民族)도 흉내낼 수 없는 슬기와 용기(勇氣)로 빛나는 독립투쟁사(独立鬪爭史)를 통(通)해 세계(世界)를 놀라게 하면서 급기야(及其也) 잃었던 조국(祖國)의 국권(國權)을 되찾고 오늘의 발전(發展)된 영광(榮光)스러운 조국(祖國)의 모습을 자랑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찬란(燦爛)한 민족(民族)의 혼(魂)인가 겨레의 얼인가 이렇게 훌륭한 우리 겨레의 역사(歷史)속의 인물(人物)들 중에는 비록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 애국충절(愛國忠節)은 그 어느 지사(志士)에 못지 않게 나라 위해 헌신(獻身)하겠다는 일념(一念)으로 불타셨던 분들이 계셨으니 곧이 탑면(塔靣)에 새겨진 분들이 다 그분들의 거룩한 행적(行跡)들을 이 좁은 탑신(塔身)에 모두 새겨넣을 수는 없지만 그분들의 업적(業績)중에서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을 간추려 적는다면 을미년(乙未年)을 전후(前後)하여 성난 파도(波濤)처럼 일어나는 독립운동(獨立運動)에 이들 지사(志士)들도 감연(敢然)히 뛰어들어 서산(瑞山)서 활약(活躍)하던 지사(志士) 서병철 선생(徐炳哲 先生)과 함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加入) 사재(私財)를 털어 임시정부(臨時政府)를 돕는가 하면 해외(海外)에서 활약(活躍)하는 항일전사(抗日戰士)들의 자금(資金)을 지원(支援)키 위하여 불철주야(不撤晝夜) 날카로운 왜경(倭警)의 감시(監視) 속을 누비며 동분서주(東奔西走)하였으나 끝내 포박(捕縛)을 당(當)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신 채 그 견디기 어려운 옥고(獄苦)를 겪으셨으니 그 얼마나 통분(痛憤)하셨으랴. 불고가사(不顧家事) 불고처자(不顧妻子) 오직 조국광복(祖國光復)을 위하여 평생(平生)을 몸바친 그 분들의 장(壯)한 발자취는 오늘을 사는 우리 후세(後世)들에게 무한(無限)한 조국애(祖國愛)와 겨레 수호(守護)의 결의를 용솟음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내 고장에 이렇게 훌륭하신 호국영령이 계셨던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後孫)들이 대대(代代)로 그분들의 공적(功績)을 기리며 후교육(後敎育)의 지표(指標)로 삼고자 잠드신 영령들의 넋을 추모(追慕)하며 여기 이렇게 조그만 정성(精誠)을 모아 탑(塔)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