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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남면 몽산리 268-2 우운 문양목 선생 생가터를 찾아왔다. 대한인국민회 회장을 역임한 문양목(文讓穆, 1869~1940)은 1905년 하와이 사탕농장 노동자 모집에 응모하여 하와이로 건너갔다. 19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를 결성하고 회장에 선임되었으며, 대동공보사 사장 겸 발행인을 맡았다. 그는 미국에서 거주하면서 전명운(田明雲)·장인환(張仁煥) 의사의 스티븐스 처단 사건 재판후원회를 결성하고, 판사전권위원으로 임명되어 재판을 후원하는 등 국내외 동포들을 대상으로 국권회복의식을 고취시켰다. 1908년 7월에는 미국 덴버에서 박용만(朴容萬)이 개최한 애국동지대표회를 후원하였으며, 박용만이 네브라스카주에 한인소년병학교(韓人少年兵學校)를 설립하자 이를 적극 후원하였다. 1910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대동신서관(大同新書館)이란 출판사를 설립했으며 같은해 대한인국민회 총무가 되어 활동했다. 1911년 2월에는 북미 대한인국민회 회장에 당선되어 군인양성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독립군 기지 개척과 해외 한인의 통합기관을 조직하기 위해 시베리아와 만주지역에 지방총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그는 대한인국민회의 중견 간부로 활동하던 중 1940년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