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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유덕이 먼 후손에게 영향을 미침은 천리요 후손이 지성으로 숭조봉사하는 것은 인자로서 행할 도리이다. 우리 진주정씨는 대제학 휘 시양에서부터 계대하며 대대로 문학을 상전하고 벼슬길이 끊이지 않고 국가에 공헌이 큰 동부의 거족이다. 그러나 불행이도 11세 휘 천유 호 동은 고려말의 태중대부 홍문관 대제학 도총제삼사좌윤판사공과 증 영의정총의 따님이신 배위 정부인 문화유씨의 묘를 고성 대둔산에 모시었다가 실전하고 12세 휘 제 호 우곡 태종조의 대제학 가선대부 한성좌윤 겸 동지의금부사 증 영의정 시 문열공과 도총무귀수의 따님이신 배위 정부인 원주원씨의 묘를 당초 양주 내송산에 모시고 표석까지 수립했었는데 실전하고 13세 휘 오 태종조 가선대부 행 병조참판공과 관찰사지직의 따님이신 배위 정부인 광주이씨의 묘소를 실전하고 14세 휘 소지 평시서주박공과 배위 숙부인 진주하씨 묘소를 실전하고 15세 휘 계증 진사 하양현감 사헌부감찰공과 배위 숙부인 해주최씨의 묘소를 실전하고 16세 휘 세구 진사 문과사헌부감찰 행 양주목사공과 배위 숙부인 해평윤씨 부 의손의 묘소를 실전했다. 위 어른들의 묘소는 오래되고 단종복위후 여려차례의 병화로 인하여 자손이 유리한 관계로 수호를 못하고 세사를 궐하여 온지 수백년이 된다. 그간 자손들의 통한이야 말로서 어찌 다할것인가! 아 시달(豺㺚)같은 짐승도 부모의 은공에 보답하거늘 항차 사람으로서 어찌 보본하지 않을것인가? 전국의 자손이 합심단성갈력하여 1983년 계해6월에 서산군 지곡면 대요리 축좌 미향에 사우를 신건하고 동은사라 현액했다. 사당안에 신위를 모시고 세향하니 비록 예경에도 없는 바이나 자손들의 성정에서 우라나온 것이니 선조의 신령들이 모두 뜰에 내려오셔서 '오! 나도 자손이 있었구나 내 음으로 도와서 무궁케하히라' 하실것이다. 사당건립의 취지와 전말을 약기하여 이 비를 수립하노니 선조를 숭봉하는 성심이 자손만대에 상전하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