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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리 김씨 세거비 역조에 많은 명현을 배출한 경주김씨의 한다리 김씨 집성촌인 한다리마을의 내력을 명기하여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한다. 앞으로는 대교천이 상왕산과 양대산에서 발원하여 용두대에서 합류한 후 단부대를 거쳐 한다리마을을 감싸 흐르고 뒤로는 가야산과 양대산에서 뻗어내려 정기어린 취영봉이 또한 이 마을을 감싸안은 길지에 한다리 김씨가 대를 이어 살게 된것은 400여년전의 일이다. 안주목사를 지내신 환공께서 인근 덕산천에에서 사시다가 이곳으로 옮겨와 집세채를 지었는데 한채는 2남 호설공이 사시다가 자손에게 물려주시고 작은집은 손 단구 자적공이 사셨다. 또 한채는 호설공의 사위 김상남공의 집이었으나 후에 적공의 4남 학주 홍욱공께서 매입하여 사시었다. 기후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자 새로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바로 이곳이 한다리 김씨가 대를 이어오는 터전이다. 고구려 예종때 태자의 스승인 인관공은 안주공의 13대조 이시다. 5대조 자수공은 효?으로 정려되고 고려말 충청도?관찰사에 이르렀으나 조선조 대종이 형조판서로 부르자 불사이성의 대의를 밝히고 자진한 충신이시다. 고조는 평양 소윤을 지내셨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신 근공이시고 증조 영원공은 호조좌랑으로 호조참의에 추증되셨으며 조는 장단부사 희공이시다. 생부 양언공은 정란공신에 제록되시고 청송부사이며 생모는 숙부인 풍덕장씨이시다. 호부 양수공은 공조판관을 지내셨으나 후사가 없어 입계하시니 양모는 고성이씨요 계양모는 상산황씨이시다. 안주공께서는 27세때인 중종 15년(1520년)에 무과에 등과하여 장서, 서흥등지의 수령과 안주목사로 명종조 제민평란의 치적을 남기셨다. 배위는 전주 이씨로 태종의 1남 경령군 제간공 배공의 증손녀 이시다. 공의 장남은 좌승지에 추증된 호윤공이고 차남 호설공은 참봉이다. 호윤공의 자 적공은 안기도찰발으로 이조참판에 추증되었고 적공의 장남 홍익공은 병자호란때 연산현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