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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수는 충남 서산(瑞山) 사람이다. 그는 1919년 4월 4일 충남 서산군(瑞山郡) 정미면 천의(天宜) 장날을 이용하여 1천여 명의 대호지면(大湖芝面) 면민(面民)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서울에서 3·1운동의 소식을 접하면서 대호지면의 면민들은 3월 중순부터 만세시위를 계획해 갔다. 평소 식민지 통치의 부당성에 대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켜가던 면사무소 사환 송재만(宋在萬)이 행동총책을 맡고, 면장 이인정(李寅正), 면내 유지 남계원(南桂原) 등이 만세시위에 참가하면서 3월 19일에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시위 군중은 경찰 주재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출동한 일본군과 일경에 의해 송재만·이인정 등의 주동인물이 피체되고 말았다. 이후 이들 면민을 다시금 만세시위를 추진하여 이웃 정미면 천의 장날인 4월 4일을 기해 대규모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대호지면에서 출발한 이들은 정미면 천의리에 이르러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일본인 순사와 순사보 등을 구타하는 한편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러나 서산·당진·공주에서까지 동원된 일본 군경에 의해 이들 만세군중은 해산하고 만세시위에 참가했던 수백 명의 인사들이 피체되었다. 그는 이 일로 피체되어 1919년 4월 24일 서산경찰서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笞刑) 90도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