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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윤상구선생께서는 한일 경술조약 체결 3년후인 1913년 3월 10일 진사 세영공의 3세손으로 이곳 용못에서 태어나시었다. 국치의 나날이 역겨워 정착없는 방랑의 반평생. 그러나 대붕의 큰 뜻을 그 누가 알았으리요! 조국이 광복을 맞이하자 이 나라 경제발전을 위하여서는 조선방직주식회사 전무이사 겸 대한방직협회 부회장으로 헌신하시었으며, 정치발전을 위하여는 과감한 민주수호에 앞장서시었다. 또한 향리발전을 위하여서는 일찌기 백부 긍수공, 중부 승수공, 아버님 명수공에게 아뢰어 이곳 공공기문에 가전을 기증하시게 함으로써 오늘의 자리에 있게 하시었고, 육영사업에도 유념하시어 우연장학회를 만드기었다. 만년에 병석, 병욱 두 아드님이 만리이역 미국에서 성공하여 모시어 가니 조국을 못잊어 잠시 다녀온다 하시고는 1982년 10월 11일 향년 70세로 끝내 불귀의 객기 되시었다. 하오나 유언에 따라 팔봉 선영하 유택으로 도라오시니, 여한은 없으시오리다. 한알의 씨가 땅에 떨어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하겼거니와, 다하지 못하신 선생의 유지는 이 땅에 소생하여 큰 수학을 걷우게 되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