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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대소의 독립운동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동안 공은 대한독립단원으로 활약하여 서산군내의 독립단 조직과 독립운동 자금조달을 위해 1918년 서산지단을 조직했고 1919년에는 3.1독립운동에 참가했다. 상해에 임정이 수립되자 공은 임정을 도와 독립투쟁을 하던중 1920년 일경에 피검되어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출옥후 애국투사 김상옥 명제세 조만식 김동순 지사들과 조국광복을 위한 일대의거를 추진중 재차 피검되여 경성형무소에서 또 다시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에도 투쟁은 계속되었고 요시찰인물로 사건이 발생할때마다 모진박해와 검속의 고난을 무수히 겪으면서도 혼신의 투쟁을 계속하다가 1945년 드디어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후에도 공은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번영을 위하여 조국애 와 민족자립정신 함양에 힘썼고 근검절약의 정신을 몸소실천하였고 애국지사의 모임인 독립동지회에 참여하여 독립정신 앙양에 힘썼왔다. 또한 공의 생존시에 그의 독립운동 공적에 대한 치하와 경위를 물으면 '독립운동은 이해를 따라하는것이 아니며 더구나 치하를 받기위하여 하는것도 아니다'라며 자신을 감추고 공로는 타에 돌리는 극히 겸양한 분이었다. 이러한 사연도 당시 법원의 판결문과 생존한 동지들의 구전에 의한것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이에 정부는 애국공적을 기려 1977년12월 건국포장을 추서하였고 유족에게는 원호금을 수여한바 있다. 유족인 서정익박사는 이 원호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