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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곽한일 의병장의 생애 장암(壯庵) 곽한일 의병장은 1869년(고종 6년) 12월 15일 경기도 여주에서 청주곽씨로 31세손 곽승현의 장남으로 출생하셨다. 님의 조부께서는 조선왕조 철종과 고종대의 정2품 승정원 동부승지를 지내시고 절충장군(折衝將軍)과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내신 곽치섭 부호군 이시다. 곽한일 의병장은 화서(華西) 이항로의 고제(高弟) 면암(勉庵) 최익현 문하의 화서학파에 속한 유학자로 당시 외세배척의 물결을 타고 척사파(斥邪派)의 정신적 지주가 된 유학 이론과 윤리와 미풍양속 등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을 집대성한 「대동정로(大東正路)」 6권 3책을 전국 유림들의 참여와 후원으로 1903년에 찬집 발간하셨다. 현재 이 책은 서울대 규장각에 보존되어 있어 많은 역사가들의 연구도서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향한 일본의 야욕이 점점 노골화되자 님의 부친께서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산을 정리하여 장남의 의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일가와 더불어 아산 송악으로 이주하여 적극 후원하기에 이른다. 일본에 의해 천인공노할 명성황후 사해사건 발발(勃發) 후 이듬해 1896년 경기도 안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신돌석 의병부대아 합류하여 막강한 전세를 올렸으나 일본 헌병대와 관군의 신식무기에 중과부적으로 패퇴하시다. 그러나 나라 위한 봉기의 집념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충청남도 아산 예산 청양 등지를 잠행하시며 비밀리에 애국동지를 규합하여 의병부대를 재결성하는데 성공 1906년 4월 400여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해미읍성을 점검하려던 차에 민종식의병장이 이끄는 의병부대가 홍주성에서 일본군에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부대의 진로를 바꿔 홍주성으로 진격 민종식 의병부대에 합류해 돌격장과 소모장으로 활약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