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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훈대부 리규풍장군. 장군은 덕수리씨로 휘는 규풍(일명 목)이요 우풍은 호요 자는 락서다. 서기 1877년 11월 2일 서울 묵동에서 통정대부 정3품 행군수 리도희씨의 장남으로 탄생하다. 비범한 재질과 대의에 관하여 움지기지 못할 굳센 기강이 있었다. 17세에 갑술과에 급제되어 궁성내직으로 봉직하다가일인의 포악한 압력으로 을사조약이 불법으로 체결되어 국권이 완전 상실되니 황제의 밀조를 받들어 개연히 일어나 권유상, 이교수등과 아라사로 가서 리법륜, 최재형등과 의병을 이르켜 대장으로 추대된후에 좌장군 안중근, 우장군 강만국등과 군사를 영솔하고 함경북도 6진에서 일병을 도륙하였다. 이때에 광무황제는 특명으로 창의대장을 제수하였다. 서기 1910년에 아라사에서 리상성, 유인석, 리범진, 리범륜, 정순만등과 만인공동회를 조직하고 일제의 간악무도한 침략행동을 세계에 호소 선포라고 울납간에서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3.1운동이후 조진수, 최수수등과 중국 만주에 와서 량기택, 김좌진, 정이형, 리동락등과 고려혁명당을 조직하여 활동할때에 국내외로 파견한 동지들이 왜적에게 학살, 체포된 비보를 접하자 울분을 금자히 못하여 졸연 피를 토하고 서기 1931년 6월 1일 중국 우산에서 순국하다. 서기 1963년 3월 1일에 건국포장을 받다. 숙인 오세라여사. 해주후인 부사 오태근씨의 장녀로 경기도 양성군 덕뫼에서 출생하여 통훈대부 선략장군 리규풍씨의 부인이 되다. 부군 리장군이 한평생 구국운동으로 집을 떠난 뒤에 년로한 시모를 지성으로 효양하였다. 서기 1919년 3.1독립만세운동후에 서베리아로 가서 부군의 독립운동을 내조하다가 부군이 순국한후에 아들 리민호를 다리고 중국 북경에서 계속 항일투쟁을 하다가 서기 1939년 3월 9일 북경에서 순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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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심숙여사(일명 앨라). 완산후인 시종 리춘식씨의 셋째 딸로 서기 1893년 1월 7일 서울에서 출생하다. 20세때 리규갑씨에게 출가하여 부인이 되다. 품성이 현숙 효순하여 범사에 관후하였다.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영육사업에 종사하다가 서기 1919년 3.1독립만세운동때에 애국 부인회를 지도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서울, 평양, 공주에서 옥중생활을 하였다. 서울에서 일헌병은 부인의 품에 안긴 아기를 빼앗아 타살하고 부인을 체포 연행하였다. 그후에 부군 리규갑씨가 독립운동하는 서베리아로 밀행하다가 함경북도 웅기항에서 왜적에게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고 서기 1921년 9월 4일에 순국하다. 서기 1962년 3월 1일 건국공로훈장을 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