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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항일의병 운동 아산사람들은 일제의 침략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항일의병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동학농민혁명 이듬해 자행된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항일의병이 일어나자 송악의 곽한일은 경기도 안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관군.일본군에 맞서 싸웠고, 1905년의 을사늑약 이듬해에 일어난 홍주의병에도 참여하여 돌격장으로 크게 활약하였다. 이 홍주의병에는 송악의 강태건과 남규진, 온양의 유진원, 도고의 성재한 등도 참여하였다. 1907년 고종폐위, 군대해산 등 일본의 국권침탈에 맞서 의병전쟁이 계속되었다. 이때 송악의 이성렬은 집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여 여주.안성에서 의병에 참여하였고, 서병림은 온양에서 수십 명의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충북 제천으로 가서 활약하였다. 의병투쟁은 후에 독립군 활동으로 이어졌다. 한편, 배방의 홍필주는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에 앞장서고 대한자강회 등에 참여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