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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현 역사(新昌縣 歷史) ● 구석기시대 : 신창 지역에서의 자료의 출현은 청동기 시대부터이나 그 이전 신석기시대에도 음식물 채취가 용이한 해안가에서 사람들의 거주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 청동기시대 : 남성리석관묘의 청동기 유물 출토로 알려졌다. 이곳에서는 세형동검을 비롯해 구슬류, 토기와 함께 검파형 동기, 방패형 동기 등 특수한 의기들이 출토되어 다수의 사람들이 거주하며 일정한 세력을 형성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 삼한시대 : 마산의 세력권 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백제시대 : 굴직현(屈直縣)에 속하였다. ● 통일신라시대 : 기량현(祈梁縣)에 속하였으며, 전란기에는 군사적 요충지로 부각되었다. ● 고려시대 : 고려초에 있었던 대대적 지방변경에 의해 신창현이 되었고 현종 9년 다른 아산지역과 함께 천안부 소속이 되었다. 신창현 서쪽 장포에서 성을 쌓고 당성이라 부르면서 서울로 조운을 위한 조곡수집의 발선처가 되었다. ● 조선시대 : 태종 14년(1414)에는 은수군과 신창현이 통합하여 은창으로 명명되기도 했으나 동16년에 다시 원래대로 분리되었으며 1789년 조사된 호구총수는 1941호, 8122구 였다. ● 대한제국시기 : 1895년 홍주부 관할에 있다가 이듬해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청남도에 소속되었다. ● 일제강점기 : 총독부의 지방개편(1914.03.01)으로 아산군으로 통합되면서 학성면으로 개칭되었으며, 다시 신창면으로 개명(1917.09.25)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