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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성재한(재평)선생 묘비문. 공의 휘는 재한(재평) 자는 雲擧(운거)이며 1860년 2월 17일 충남 아산군 신창면 원당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창녕이며 문간공 우계선생의 9대손으로 유시로 부터 학업에 열중하고 속된 일은 하지않았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40이 넘어 국군이 기울어지매 벼슬할 뜻을 버리고 1905년 1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통분함을 금치 못하고 우국일념으로 나날을 보내었다. 1906년 1월에 의병을 소모할때 부인더러 말하기를 오늘은 곧 나의 뜻을 세워 볼때라 대장부 마땅히 의병에 나가 국가원수를 섬멸하여 원한을 풀고자 하며 만일여의치 못하면 집을 떠나는 날이 곧 죽는 날이라 말하고 집을 떠나 거사에 참여하였다. 동월 28일 예산군 광시면 광시장터로 뜻을 같이 한 동지들이 3천여명이나 모인지라 민종식을 창의대장으로 하여 군제를 정할새 공은 운량관의 중책을 당부하고 홍주성을 향하여 행동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형세가 불리하다는 홍목의 권유로 회군하다가 청양군 화성면 합천에서 왜군의 급습으로 일부 의사는 피체되었으며 기외 의병은 피신하여 동년 4월 19일 홍산에서 재기하여 홍주성을 향하여 진군 동월 26일 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왜군의 점차증원으로 악전고투하다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 직전에 이르러 사세가 위급하자 동료참모가 공에게 피신 할 것을 권하니 공은 대노하여 꾸짖어 말하기를 싸움에는 목이 부러지는 장군은 있의되 무릎 꿇는 장군은 없나이라 하며 채광묵 서기환 전대진등의 동료들을 더욱 격려 최후의 일각까지 항거하다 윤4월9일 성이 함락되자 전사한 독립유공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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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2월 13일 포등제998호로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아아! 슬프다 공은 왜적과 친일도당들이 우글거린 그때 구국대열에서 신명을 바친 위대한 정신이야말로 온 겨레에 귀감이자 백세의 등불이라 할것이다. 기 충혼을 추모하는 뜻에서 삼가 여기 공의 묘전에 비를 건립하여 공의 얼을 숭앙하고 후세들의 애국정신 함양에 공하고자 한다. 1985년 4월 홍주의병유족회장 여흥후인 안서영 짓고 경주후인 기산 이상현 쓰고 당진군수 김흥태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