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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한(成載翰)은 1904년 2월 한일의정서(韓日議政書)가 발표되자 가출하여 예산(禮山)·홍성(洪城)·보령(寶寧) 등지를 전전하면서 항일투쟁을 함께 전개할 동지를 규합하여 갔다. 1905년 10월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각처에서 애국지사들이 의거의 기치를 올리자 즉시 귀가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몸바칠 것을 결심하고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이때 민종식(閔宗植)이 의병을 일으키니 그의 휘하에 투신하였다. 성재한은 의진의 운량관(運糧官)이 되어 홍주입성전에 참가하였다. 쫓겨간 적군이 전열을 가다듬고 5월 9일 탈환작전을 전개하여 탄환을 쏘아 댔다. 형세가 이미 기울어 의병장 민종식은 성을 넘어 피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재한·전태진(田泰鎭)·서기환(徐基煥)·전경호(田慶浩)·유준근(柳濬根) 등은 성을 사수할 것을 결심하고 성에 남았다. 이때 성재한은 "나는 중한 책임이 있다. 이 문부(文簿)들을 안고 장차 어디로 간단 말이냐" 하고 성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성은 적에게 함락되고 채광묵(蔡光默)부자도 불에 타 죽었다. 이 전투에서 죽은 사람이 무려 백여 명에 달하였으며 잡혀간 사람이 83명이나 되는 격렬한 전투였다. 성재한도 결국 이곳에서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