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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물의 생멸과 인간의 역사가 쌓이고 후세인의 거울이 되며 고대 인류사회에서 오늘의 문명을 이루기까지 유래와 문화유산은 소중한 것이다. 도이리도 해미현에서 서산군으로, 서산군에서 당진군으로 편입되는 변화를 가. 중종조 서기 1536년경 충청감사 남세건공이 해미현시찰중 도촌을 자손보전지의 점지한것이 460년전이고 후에 손자 남유장군 증손 남이흥장군 양대 순절공신에게 .. ??절목에 따르면 대호지면 일원과 천의 아산으로 되어있고 토지가 척박하여 사람이 드물다고.. 도이리를 살펴볼때 고분으로 미루어 의령남씨와 여산송씨가 장거하였음을 알 수 있고 도이리는 남씨 집성촌이고 이내 애동(쑥박골)은 송씨집성촌으로 이어왔다. 도이리 내 지명도 뜻이 깊다. ?마 기르던 마명동이 말우리로 궁시를 만든 전동이 살곶이로 무예닦던 궁평이 활우리로 궁평 좌우에 동각골 서각골 당시 동서에 궁각이 있어 연유된 지명이다. 일제하 1930년경 도이섬을 중심으로 간사지를 개척함에 인구가 유입하여 1980년도에 분구가 되었다. 충절의 고장 도이지에는 불천지위 충장사 남씨 양세충신정려와 많은 사적이 있고 동호의숙(현 강당터)출신 후학중 애국지사로 건국훈장과 대통령 표창이 추서된 분이 20여명에 이른다. 도이리는 수백년을 도이섬이라 불려왔고 도이섬이란 관창산 앞딴섬을 말하는데 원래 뜬섬이 변한것이고 썰물때는 육지가 되고 밀물때는 뜬섬이 되고 이섬에 가득 핀 복숭아 꽃 오얏나무 꽃이 절경이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