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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은 지형을 이용하여 일본경찰대에 항전하였으나 탄약이 고갈되어 일본 경찰대의 추격을 받게 되었다. 의병대는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동굴 속에 몸을 숨기고자 하였으나 발각되어 5명이 희생되었다. 의병대는 섬의 동남쪽에 있는 돌각지점에서 경찰대의 집중 총격을 받아 36명이 살해되었다. 나머지 의병들은 바닷물에 뛰어 들어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였으나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이 소난지도 전투에서 의병은 100여 명이 전사 또는 행방불명된 것으로 확인된다. 9명이 부상을 입고 포로로 잡혔으나 이들 역시, 현장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이 의병총은 의병의 흩어져 있던 유해를 해방 후에 주민들이 수습하여 조성한 것이다. 1977년 당시 석문중학교 신이균 이사장이 중심이 되어 소난지도의병의 흩어진 유골을 수습하여 봉분을 조성하였다. 출처 : 국내 항일독립운동사적지 조사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