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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 2리 마을 유래비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최초의 난지도 기록이 있은 후 여지도선 당진현지도에 당진현 내맹면 난지도로, 해동여지도에는 다시 난지도로, 그후 대동여지도(1861년)에서 최초로 소난지도가 보인후 호서읍지(1871년)에 당진현 내맹면 소난지도리는 홋수 54호, 남 110명, 여 112명으로 나와있다. 그후 당진현 도동면 난지도리로, 그뒤 1895년 지방관제 개정으로 당진군 내맹면 난지도리 또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석문면 난지도리로 통합되었다. 난지도 2리는 현재 홋수 85호 인구 170명으로 소속도서는 소난지도에, 도비도, 대조도, 소조도, 분도, 우무도, 비경도이고 도비도는 연륙되어있으며 소난지도에는 갑진, 듬배의 두마을이 있다. 소난지도 포구는 옛 고려, 조선시대 전라,경상 세곡을 경창(서울 마포)으로 운송하던 조운선이 머물던 천연의 양항이었다. 또한 1908년 3월 15일(양) 일본의 을사조약 강제체결에 분개한 홍원식 의병대장등 100여명의 의병들과 일본 무장경찰과의 쌍방간 총격전으로 의병 100여명이 희생되어 그들 무명용사들의 의병총이 듬배마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