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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순 의병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전남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 앨범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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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군 죽암 전명운의사 기념조형물, 추월산 의병전적지비, 김응회장군 순절비, 금성면 대곡리 고하 송진우선생 생가, 기념관, 무정면 덕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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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고공광순 순절비 한말의병대장 녹천 고광순의사는 조선 현종 14년(1848)에 창평고을에서 태어나, 의열공 고인후의 사손으로서 손색없는 학문을 닦았으나, 그때부터 나라가 이미 망국의 조짐을 보이자 과감하에 등과출사의 뜻을 접고 드높이 구국의 횃불을 들었다. 1895년 을미사변에 분연히 거병한 이래 영호남을 오가며 10년을 암약한 뒤, 1905년 을사늑약 체결과 함께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아 [총리영 사 호남의병대장]이 되어 [남원 광주 화순 능주 동복 구례 순천] 등지에서 자신이 제작한 불원복기을 앞세우고 감연히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행세가 날로 불리해지자 이곳 연곡사에 들어와 유격전을 펴다가 일분군경의 연합부대에게 포위되어 집중포화를 받고, 1907년 음력 9월 11일 새벽에 부하장졸들과 함께 장렬하게 순국하니, 그 옛날 그의 12대조 제봉 고경명과 그의 두 아들이 임진 계사로 연이어 순국한 이래 315년만의 일이었다. 일본 군경이 유인석 최익현 등과 함께 [폭도삼괴]로 지목하여 기필코 투벌하려 했던 거목 중의 한 분이 바로 이곳에서 그렇게 쓰러진 것이다. 뒷날 구례군민들이 뜻을 모아 이 자리에 순절비를 세웠으며, 공의 순국 100주년인 2007년 봄에 구례군에서 현재와 같은 정화사업을 시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