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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1859년 9월 3일 광의면 지상마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자는 여직(汝直)으로 너그럽고 사소한 예절에 거리끼지 않았으며 남의 어려운 일을 보면 나서서 대신 해결하여 주곤 하였다. 선생은 35세때 부인과 사별하였으나 재혼을 사양하고 명산대천을 거닐고 약초를 캐면서 가정의 화목을 지키고 있던 중 1919년 전국에서 대한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구례 장날인 3월 24일에 시장 한복판에서 국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불렀다. 온 시장사람들도 호응하여 만세를 불렀다. 선생은 왜병에게 끌려가면서도 '때려도 좋아 만만세! 죽어도 좋아 만만세!'를 절규하였고,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동지들을 불지 않았으며, 재판에서도 왜의 학정을 규탄하여 8개월여의 옥고를 치루었고, 출옥한 후에도 그 여독으로 고생하다가 1923년 8월 2일 생을 마친다. 실로 기품이 높고 뛰어난 추상같은 늠름함이 아닌가? 그러기에 '만세 할아버지'로 불리운다. 선생의 절의와 기품을 흠모하고 기리며 후학들의 귀감을 삼고자 구례 군민의 뜻을 모아 여기 이 빗돌에 새긴다. 2001년 4월 20일 구례군민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