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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士 南崗 申公 紀蹟碑(의사 남강 신공 기적비) 남강은 천성이 강직하고 지기강개하고 바르고 조리있는 말을 잘하여 동료들에게서 추앙받은 사람으로서 키가 7척이나 되고 소리가 우렁차 호랑이 같이 소리를 내며 스스로 "내게 큰 뜻이 있다"고 하였다 한다. 때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제에 못이겨 1905년 (4238) 을사보호조약이라고 우리의 손발을 묶어놓은 조약을 억지로 맺게되니 전 국민은 분통을 참을수가 없어 어찌할줄을 몰랐다. 그중에서도 충정공 민영환의 자결, 홍만식 조병세의 분사, 황정신문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이란 논설, 전국각지의 의병활동의 봉기, 면암 최익현의 기병피체, 한일신조약 체결, 군대해산, 이완용집 방화, 박성환 자살, 황제즉위식, 미인 스티븐슨 사살 등등 나라 내외가 어지러운 상태였으며 걷잡을 수 없이 일본놈의 학대에 참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때 이 곡성에서도 남강 신정백는 1908년 의병장 조춘화의 예하에서 동지 수백명을 모집하여 왜적과 남양 숲속에서 싸워 왜적 수십명을 죽이고 노획한 것이 많았다. 그러다가 태안사로 진을 옮기다가 적의 야습을 받아 할 수 없이 동지들은 뒷날을 기약하고 헤어지며 혼자 왜군에 잡히어 그 무시무시한 악형을 받으면서도 끝내 굴치 아니하고 사정없이 퍼부우니 광주로 옮겼다가 다시 대구로 옮기어서도 끝끝내 굴지않고 조용히 순절 하였다. 출처 : 곡성군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