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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동락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四尺崇封(사척숭봉)의 쌍분은 애국지사 윤공과 배위 성주배씨의 만년유택이다. 공의 휘는 정구요 성은 윤씨이며 관은 남원으로서 이씨조선의 현상 문○공 휘 효손의 14세손인 휘 태성과 김해김씨를 考妣(고비)로 하여 단기 4215년 辛巳(신사) 3월 22일에 고달면 목동에서 태어났다. 공은 천자가 宏傑(굉걸)하며 6척장신에 압인지자를 지녔으며 지용이 출중하였다. 왜제의 강압으로 을사오조약이 체결되어 고종황제가 퇴위하고 군대마져 해산되자 이에 격분한 공은 생명을 조국광복에 바치고자 자진 백의종군의 의병이 되었다. 공은 결사보국키로 결의한 동지 공성찬 임세묵 임기숙 임기서 제인 등과 더불어 남원 순창 함양 거창 곡성 구례 등지에서 많은 의병의 선봉장으로 용약 지방토호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하는 한편 무기를 갖추어 왜군경을 격멸하여 최후까지 유적전을 벌이다가 단기 4242년 10월경 왜헌병에게 체포되었다. 먼저 체포된 공성찬 임세묵등 동지는 교수형을 당하였고 공은 피체당시 왜의 국경일에 해당되어 교수형을 면하고 15년의 중형을 언도받아 7년의 옥고를 치루었다. 출옥후로도 조국광복을 애절하게 기다리며 왜경의 감시 아래 고난의 세월을 지냈다. 마침내는 8.15의 광복을 맞이했으나 공은 국권회복을 위한 구국항쟁의 의병 열사로 대접받지 못한 채 단기 4286년 9월 15일 73세로 한 많은 생애를 마쳤으나 단기 4315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