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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까지 응전하다가 장렬히 순국하니 강의 1년 정미 서기 1907년 9월 11일 향년은 60세 였다. 그날 동지 임준홍 공이 공의 몸을 솔가지로 덮어 보호했었고 다시 매천 황현공이 와서 통곡하며 봉분을 지었다가 이듬해 4월 반장하는 길가에는 고을마다 울음소리 의열공 무덤 곁에 안장하고 1년 뒤에 부인 금성 오씨를 합장 재항, 재홍 두 아들은 일찍 여의고 사위는 행주 기산도요 광훈의 아들로써 대를 잇게 한 뒤 세월은 흘러 무릇 60년 헤아리건데 그 어른들의 공로로 광복된 오늘이라 나는 노래로써 찬양하고 그 큰 뜻을 천추에 전하려 한다. 의를 보고 몸을 버림은 종기에 침 놓는 것 같고 이익 따라 몸을 달림은 도둑과 같다 하셨네 녹○○○ 님의 발자취 어느 적에 사라지리까 그 뜻 그 이름 이 겨레하냥 만고에 전하리라 1970년 월 후학 이은상은 글을 짓고 방손 영완은 글씨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