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page


4page

죽암 전명운 의사 기념조형물 죽암(竹嵒) 전명운(田明雲) 의사는 담양전씨 25세손으로 1884년 6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영민하고 정의감이 출중하여 조선 부녀자를 거리에서 희롱하는 일본인을 응징하는 사건을 일으키고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가, 1905년 미국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도산 안창호가 주도한 한인동포 애국단체인 공립협회(共立協會)에 가입했다. 1908년 일제의 한국 침략행위를 정당화 하는 선전 활동 차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대한제국의 외교고문 D.W.스티븐스가 "한국의 농민 대중인 일본의 지배를 원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자 3월 23일 페리부두에서 장인환과 함께 권총으로 응징, 처단하였다.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으나 애국정신에 감동한 한인 동포들과 미국 변호사들의 법정투쟁에 힘입어 구금 97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후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이상설, 정순만, 이범윤 선생 등 민족지도자들과 독립운동 방략을 논의하는 한편, 독립군기지 건설에 참여하였으며 안중근 의사의 이등박문 주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1909년 10월 연해주에서 다시 미국으로 귀환한 후 애국 강연을 통한 독립운동을 계속하면서 군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였고 194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조직된 한인국방경위대(맹호군)에 입대하는 등 평생을 조국광복에 헌신하다가 1947년 11월 18일 서거했다. 1962년 대한민국정부는 전명운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으며 1994년 해외안장 애국선열 봉환사업에 따라 유해가 고국으로 모셔져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되었다. 현 조형물은 2008년 5월 5일 죽암 전명운 의사의 페리의거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