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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근왕창의장 청계언양김공응회 모부인 창녕성씨 순절비문 공(公)의 휘는 응회(應會)요 자는 시극(時極)이오 호(號)는 청계(淸溪)이다. 성은 金氏이니 신라왕의 후예로 언양(彦陽)을 본관으로 하고 고려조에는 위열공 취려(就礪)와 익대공 전(佺)이 부자(父子)이시고 평장사(平章事)가 되어 그로부터 대를 이어 현관(顯官)이 그치지 아니하였다. 공(公)의 증조(曾祖) 삼준(三俊)에 이르러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고 그 아들이 송무(松茂)니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이요 그 아들이 성벽(成壁)이니 광양훈도(光陽訓導)이다. 창녕성씨(昌寧成氏) 이조판서 세미(世美)의 따님을 취하여 명종10년을묘(明宗十年乙卯(1955)에 한양저택에서 공(公)을 낳으셨다. 자라서 문간공(文簡公) 우계성혼(成渾)선생에게 수업하고 또 건재(健齋) 김천일공(金千鎰公)과 함께 종유(從遊)하니 건재공은 동종(同宗)이다. 공(公)은 어렸을때 부친을 잃고 죽을 마시며 시묘하면서 모부인성씨(母夫人成氏)의 병환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죽에타서 드리니 차도가 있었다. 공(公)은 성현의 글에 마음을 기우려 밤낮으로 게으름이 없었다. 당시의 관찰사(觀察使)가 조정에 천거하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