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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를 추모하며 천양하기 위하여 비돌을 마련하여 그 의적을 기리 전하려하는데 공의 종질인 선기 아사가 한상을 찾아 비명 글월을 교청했다. 내 불감사하고 장덕을 글로써 삼가 쓰나니 공의 휘는 제중이니 광산에 적하여 문정공 휘 태현이 파조이고 병자(1663) 난에 창의발격했던 만덕 선생 휘 대기의 13대손이다. 공은 휘 용악과 여산 송시를 고비로 고종 계사(1893) 5월 25일에 대산세제에서 출생했다. 체모가 웅위하고 담략이 이범하여 백부의 장이 될 차질이 있었다. 5세에 부친을 잃고 편모시하에서 자랐으며 일찌기 그 백부인 휘 용직 공에게서 수학하여 학문이 숙성되고 강개기절이 뛰어났다. 경술국치를 당하자 일제의 질곡에 충분을 이기지 못하고 조국의 독립정신을 향사민에게 고취교화시켰다. 기미(1919) 독립운동 당시에 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각지에서 의거가 봉기되였는데 당시 공작대원의 일원으로 각지방을 비밀순회하면서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대동단 신덕영의 밀금으로 김성현 문동길과 같이 조국광복에 망생순의할 것을 맹세하고 지방 부호들에게서 갹출된 성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했으며 수표 및 현금으로 모의 중에 부적한 장도자의 밀고로 왜경에 체포되자 그 자위인 송씨께서는 격분을 이기지 못하여 신유(1921) 9월 17에 자결했고 동년 11월 12일에 징역 10년을 언도받아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르시었다. 형기를 마친 후로 향리에서 자정하면서 광복을 지켜보다가 해방후 5년인 경인(1950) 11월 11일에 향년 58세로 고종했다. 이어 명사를 쓰